[녹색세상]컵 보증금제를 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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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길중 작성일25-07-29 14:02 조회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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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규칙과 기준을 바꾸는 일은 참으로 힘들다.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까지 장애인 몇분이나 목숨을 잃었던가. 정작 그 엘리베이터에는 장애인보다 어르신, 유아차나 카트를 끄는 분들이 더 많이 탄다. 게임의 규칙을 정의롭게 바꾸면 그 혜택이 골고루 가닿는다. 하지만 규칙을 바꾸는 일은 찰떡같이 말해도 개떡같이 이해되고 칭찬은커녕 욕만 들어먹는다.
2018년부터 쓰레기 ‘덕후’들은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도입하라며 길에 버려진 플라스틱 컵을 주웠다. 그 컵을 브랜드별로 구분해 해당 매장에 가져다주거나(네가 책임지세요),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보내 컵 보증금제 시행을 촉구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어차피 플라스틱 컵은 오염되거나 로고가 찍혀 있어 재활용이 안 된다. 그렇게 컵을 주운 결과 2020년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법제화됐고, 2022년 6월 전국에서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환경 규제를 공산당 박멸하듯 대한 윤석열 정권에서 컵 보증금제는 갖은 박해를 당하며 세종과 제주에서만 시행됐다. 컵 반납과 보증금 환급이 원활하지 않아 소비자를 불편하게 만들더니, 급기야 환경부가 컵 보증금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작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다시 여름이 됐다. 컵 보증금제 전국 확대를 철회하고 지자체 자율 시행으로 떠넘기려는 조짐이 보인다. 업계는 효과도 없는 컵 보증금제에 예산만 낭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증금제를 도입한 독일은 매해 98%, 스웨덴과 덴마크는 90%의 음료병 회수율을 자랑한다. 하와이도 보증금제 시행 후 병 회수율이 41%에서 72%로 뛰었고, 시행 2년 만에 해변에 버려진 음료병의 절반이 회수됐다. 세종과 제주에서도 한때 보증금제 이행률이 81%에 달했다. 스타벅스는 제주도 전 지점에 일회용 컵을 없애고 다회용 컵을 도입했고 보증금제 시행 이후 개인 텀블러 사용도 급증했다. 하지만 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이 철회될 낌새를 보이자 사그라들었다.
독일·덴마크·스페인에서도 보증금제 도입 시 엄청난 반대에 직면했다. 왜냐면 보증금제는 쓰레기 처리에 나 몰라라 하던 업계가 쓰레기 회수, 보관, 재활용을 책임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계는 환경부에 솔깃한 제안을 한다.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보증금제 말고 차라리 일회용 컵을 유료화하거나 세금을 매깁시다! 그 비용은 소비자가 내는 것이고 업계는 음료 가격을 올리기만 하면 된다. 소비자도 돈 몇푼 더 내도 컵을 반납하지 않고 버리는 게 편할 것이다. 이건 아니다. 쓰레기를 버린 사람과 쓰레기를 만든 기업이 책임지게 해야 한다. 보증금제가 불편하다면 그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보증금제가 필요하다. 발 디딜 틈 없이 집에 쌓인 쓰레기는 치워야 하고, 지구는 우리의 유일한 거주지다. 이재명 대통령은 페트병 보증금제를 환경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컵 보증금제를 잘 시행하고 페트병까지 가는 거다. 변경된 규칙에 적응하기까지 잠깐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기준을 똑바로 세우면 그 혜택이 우리에게 돌아온다. 당장 무거운 짐을 들고 지하철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보시라. 그럴 때마다 나는 장애인 투쟁에 감사의 절을 올리고 싶다.
북한이 이재명 정부에 대해 “마주 앉을 일 없다”고 선을 긋자 대통령실은 “정부는 적대와 전쟁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일관되게 취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28일 입장문을 내고 “정부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북 고위 당국자의 첫 대남 대화를 통해 표명된 북측 입장에 대해 유의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통령실은 “지난 몇 년간의 적대·대결 정책으로 인해 남북 간 불신의 벽이 매우 높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인 평화 정착은 이재명 정부의 확고한 철학”이라고도 강조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조·한(남북)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제목의 담화에서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공식 입장을 다시금 명백히 밝힌다”고 밝혔다. 북한이 이재명 정부를 향해 공식 입장을 낸 것은 처음이다.
김 부부장은 또 이재명 정부의 대북 화해 제스처에 대해 “이재명 정부가 우리의 관심을 끌고 국제적 각광을 받아보기 위해 아무리 동족 흉내를 피우며 온갖 정의로운 일을 다하는 것처럼 수선을 떨어도 한국에 대한 우리 국가의 대적 인식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충북 제천종합운동장에서 27일 열린 제58회 대통령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에서 우승한 충남 신평고 선수들과 코치진, 학교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 민법 제781조1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혼인관계에서 태어난 아이에게는 자동으로 아버지의 성이 붙는다. 아이에게 어머니 성을 물려주려면 혼인신고를 할 때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느냐’라는 칸에 ‘예’라고 적고 협의서도 제출해야 한다.
혼인신고를 할 때 이 협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머니 성을 물려주려면 이혼을 하고 다시 혼인신고를 하거나 법원의 허가를 받아 성을 바꾸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2005년 호주제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고 폐지됐지만 아버지 성을 기본으로 물려준다는 민법 조항은 그대로 남았다. 어머니 성을 따를 때만 특정한 절차를 요구하는 것, 그것도 태어났을 때가 아닌 혼인신고 때 사전 협의를 요구한다는 것은 차별이라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이 조항은 바뀌지 않았다. 이설아 세계시민선언 대표(31·사진)는 2021년 3월 이 민법 조항이 ‘혼인·가족생활은 양성평등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 등을 위배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 사건은 그해 4월 전원재판부에 회부됐지만, 4년 넘도록 변론 한 번 열리지 않았다.
지난해 기준 헌법재판소의 평균 심판 처리기간(724.7일)의 2배에 달한다.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한동훈 장관 시절이던 2022년 10월25일 부성우선주의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는 의견서를 냈다. 형제자매 간 서로 다른 성으로 인해 괴리감이 생길 수 있고, 가족관계에서 성이 갖는 전통적 의미 등을 고려하면 위헌성이 없다는 취지다.
이 대표는 지난 16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법무부가 반대를 위한 궤변을 짜냈다고 생각한다”며 “형제자매 간 성이 달라지는 것이 문제라면 부부가 합의해 어머니 성으로 통일할 수도 있는 문제다. 당시 법무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들고 나오면서 수립된 정권 기조에 반대하기 어려워 이런 의견을 냈다고 본다”고 말했다.
24일 김상환 헌재 소장과 오영준 재판관이 취임하며 헌재는 9개월 만에 재판관 9인 ‘완전체’가 됐다. 12·3 불법계엄으로 인한 탄핵 사건들도 대부분 종료되며 국민 기본권을 구제하는 헌재의 본래 역할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이 대표는 정권이 바뀌고 헌재도 재편된 만큼 전향적 결정을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이 문제는 젠더갈등 이슈도 아니고 결코 과격한 주장도 아니다”라며 “‘아이가 꼭 엄마 성을 따라야 한다’는 게 아니라 출생할 때 성을 협의해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이야기”라고 했다. 또 “헌재가 과거 호주제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듯 사회를 리드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했다. 이 대표는 부성우선주의 폐지에 동의하는 시민들의 탄원서를 헌재에 제출할 계획이다.
헌법소원 절차가 지연되는 사이 이 대표는 아이를 낳았다. 100일이 갓 지난 아기는 엄마 성을 물려받았다. 만약 아이가 나중에 커서 자신의 성에 대해 물어본다면 어떻게 답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아이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아빠 성을 물려받은 것처럼, 너도 특별한 이유 없이 엄마 성을 물려받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 성과 아빠 성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중 엄마 성을 선택한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2004년 어느 날 밤 12시 이용관씨(69)는 잠들지 않고 중학생 아들 한빛을 기다렸다. 시험 기간을 맞은 한빛은 밤늦게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다. 용관씨는 귀가한 아들에게 “잠을 좀 자야 말끔한 정신으로 시험을 보지 않겠냐”며 타일렀다. 한빛은 괜찮다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며칠 뒤 아내가 용관씨에게 슬며시 말했다. “학생회에서 들었는데 여보, 그날 한빛이가 독서실 안 가고 여의도 불꽃축제에 갔대.” 고민하던 용관씨는 한빛에게 “문제 있는 애들과 어울리지 마라”며 메일을 보냈다. 한빛이 곧장 반박했다. “아빠,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가 그런 말을 해도 돼요?” 허를 찌르는 아들의 답장에 용관씨는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늘 “한 발 앞서가는 아들”이었다. 전교조 교사인 용관씨는 한빛을 입시 경쟁에서 자유로운 대안 학교로 보냈다. 하지만 한빛은 “진보든 보수든 한국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려면 명문대를 나와야 한다”면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서울대 정치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생이 된 한빛과 불평등한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 토론하곤 했던 용관씨는 언젠가부터 똑똑한 아들의 논리에 졌다. “자기 고집이 있고 바라는 세상이 확고했던” 아들이 용관씨는 못내 자랑스러웠다. 그런 한빛이 2016년 10월26일 “노동자를 쥐어짜는” 현장을 유서로 고발하고 앞서갔을 때, 용관씨는 세상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용관씨는 문학가가 되고 싶었는데 “밥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국어 교사로 진로를 바꿨다. 얼결에 선택한 진로지만 밥 먹듯 청강을 할 정도로 용관씨는 교육학에 깊이 빠졌다. 용관씨는 “한창 사랑받아야 할 시기에 사랑받지 못하는” 소외된 학생들을 사랑했다. 평등한 교실을 꿈꾼 용관씨에게 교육 현장은 “형편없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매 맞고 무시당하는 모습을 참지 못한 용관씨는 1989년 다른 교사들과 전교조를 만들었다. 같은 해 한빛이 태어났다.
똑 닮은 아들이었다. 한빛은 용산참사 희생자, 비정규직·정리해고 노동자 등 소외된 사람들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봤다. 평등한 세상을 꿈꾼 한빛에게 한국 사회는 형편없었다. 한빛은 공책에 썼다. “제 글을 돌아보면 우리 공동체와 세계의 이후를 죄 부정적으로 그려요. 희망은 모두 허상이고 갈등과 모순이 우리를 영원히 괴롭히고 짜증 나게 할 거라고요. 글은 제 인격의 반영이니 제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렇다는 거겠죠. 우리가 삶을 충실히 살아갈 때 축복이 있을 거라 진심으로 믿었다면 나올 수 없는 글들이지 않을까요?”
이상과 현실이 동떨어질수록 한빛은 행동하려 했다. 천주교도였던 한빛은 천주교 재단 병원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자 더는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드라마 조연출로 받은 첫 월급의 절반은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KTX 정리해고 승무원들에게 후원했다. 2016년 대학문학상 수상 후기에서 한빛은 바랐다. “세월호와 정리해고로 아픈 모든 이들, 언제나 나를 이해해주는 부모님까지 덜 추운 겨울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덜 추운 세상’을 바랐던 한빛이 2016년 CJ E&M에 드라마PD로 입사해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미는” 일을 했다. 당시 한빛이 소속된 tvN 드라마 <혼술남녀> 제작팀은 첫 방송 직전 사전 제작에 참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갑자기 해고했다. 한빛은 그들을 ‘정리해고’하고 이미 지급한 계약금을 돌려내라고 독촉하는 역할을 떠맡았다. “경멸했던 삶을 더 이어가긴 어려웠던” 한빛은 “통장 정리하고 남는 돈이 있으면 빈곤사회연대 등 몇 개 단체에 후원금으로 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용관씨였다. 아들은 원하던 드라마PD가 됐고 아끼던 제자도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퇴직을 앞두고 “이제야 편안한 말년을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미래를 함께할 한빛이 사라졌다. 신을 원망하던 용관씨의 ‘애간장’이 녹았다. 한빛을 떠나보내고 간에 농양이 생긴 용관씨는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용관씨는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한빛에게 받은 행복을 돌려줄 수 있을까.’ 용관씨는 한빛이 펼치고 싶었던 뜻과 한빛이 만들고 싶었던 미래를 떠올렸다. 한빛이 사라진 자리에 바꿔야 할 세상이 남아 있었다. 용관씨는 아들을 대신해 그것을 바꿔나가기로 했다.
용관씨와 가족들은 2018년 1월24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만들었다. “방송 업계와 노동 현실을 전혀 몰랐던” 용관씨가 방송노동자들을 만났다. ‘프리랜서’라는 이름 뒤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언어폭력과 임금 체불이 숨겨져 있었다. 용관씨는 방송계 노동 현실을 알리는 캠페인을 기획하고 실태 조사에 나섰다. 변화는 “급진적이지 않고 야금야금” 일어났다. 하루 22시간씩 이어지던 촬영은 최대 16시간으로 줄었고 최저임금에 미치지 않던 임금이 올랐다. 촬영 현장의 노동자들이 용관씨를 알아보고 “고맙다”며 인사했다. 그 사람들이 다 한빛 같았다. 퇴직 후 교실을 떠난 용관씨는 본격적으로 노동 현장을 향하기 시작했다.
이제 용관씨는 노동 문제엔 빠지지 않는 사람이 됐다.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될 때도 용관씨는 단식 투쟁으로 함께했다. 가족들이 말렸지만 용관씨는 “일주일만 하고 쓰러지는 척할 테니 걱정마라”면서 29일을 버텼다.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이 보이는 싸움엔 지치지 않는다”는 용관씨도 가끔은 더는 싸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길을 걸을 땐 어디선가 한빛이 “아빠!”하고 나타날 것만 같아서,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들리면 또 노동자가 다쳤을까 싶어서, 용관씨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용관씨는 딱 두 가지를 후회한다. 한빛이 중학생 때 귀를 뚫지 못하게 혼낸 일, 고등학생 때 드럼을 배우지 못하게 한 일이다. 아들이 원하는 건 다 해주고 싶었던 용관씨는 나중에 한빛을 만나면 물어보려 한다. “네가 펼치고 싶었던 뜻, 너 대신에 내가 열심히 노력하다 왔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고집 세고 똑부러진 한빛이 어떤 대답을 할진 모르겠다며 용관씨는 웃었다. “눈망울이 똘망똘망하고 마음이 예뻤던” 아들을 대신해, 그런 한빛과 똑 닮은 미래를 용관씨는 기다린다.
2018년부터 쓰레기 ‘덕후’들은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도입하라며 길에 버려진 플라스틱 컵을 주웠다. 그 컵을 브랜드별로 구분해 해당 매장에 가져다주거나(네가 책임지세요),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보내 컵 보증금제 시행을 촉구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어차피 플라스틱 컵은 오염되거나 로고가 찍혀 있어 재활용이 안 된다. 그렇게 컵을 주운 결과 2020년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법제화됐고, 2022년 6월 전국에서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환경 규제를 공산당 박멸하듯 대한 윤석열 정권에서 컵 보증금제는 갖은 박해를 당하며 세종과 제주에서만 시행됐다. 컵 반납과 보증금 환급이 원활하지 않아 소비자를 불편하게 만들더니, 급기야 환경부가 컵 보증금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작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다시 여름이 됐다. 컵 보증금제 전국 확대를 철회하고 지자체 자율 시행으로 떠넘기려는 조짐이 보인다. 업계는 효과도 없는 컵 보증금제에 예산만 낭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증금제를 도입한 독일은 매해 98%, 스웨덴과 덴마크는 90%의 음료병 회수율을 자랑한다. 하와이도 보증금제 시행 후 병 회수율이 41%에서 72%로 뛰었고, 시행 2년 만에 해변에 버려진 음료병의 절반이 회수됐다. 세종과 제주에서도 한때 보증금제 이행률이 81%에 달했다. 스타벅스는 제주도 전 지점에 일회용 컵을 없애고 다회용 컵을 도입했고 보증금제 시행 이후 개인 텀블러 사용도 급증했다. 하지만 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이 철회될 낌새를 보이자 사그라들었다.
독일·덴마크·스페인에서도 보증금제 도입 시 엄청난 반대에 직면했다. 왜냐면 보증금제는 쓰레기 처리에 나 몰라라 하던 업계가 쓰레기 회수, 보관, 재활용을 책임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계는 환경부에 솔깃한 제안을 한다.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보증금제 말고 차라리 일회용 컵을 유료화하거나 세금을 매깁시다! 그 비용은 소비자가 내는 것이고 업계는 음료 가격을 올리기만 하면 된다. 소비자도 돈 몇푼 더 내도 컵을 반납하지 않고 버리는 게 편할 것이다. 이건 아니다. 쓰레기를 버린 사람과 쓰레기를 만든 기업이 책임지게 해야 한다. 보증금제가 불편하다면 그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보증금제가 필요하다. 발 디딜 틈 없이 집에 쌓인 쓰레기는 치워야 하고, 지구는 우리의 유일한 거주지다. 이재명 대통령은 페트병 보증금제를 환경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컵 보증금제를 잘 시행하고 페트병까지 가는 거다. 변경된 규칙에 적응하기까지 잠깐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기준을 똑바로 세우면 그 혜택이 우리에게 돌아온다. 당장 무거운 짐을 들고 지하철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보시라. 그럴 때마다 나는 장애인 투쟁에 감사의 절을 올리고 싶다.
북한이 이재명 정부에 대해 “마주 앉을 일 없다”고 선을 긋자 대통령실은 “정부는 적대와 전쟁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일관되게 취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28일 입장문을 내고 “정부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북 고위 당국자의 첫 대남 대화를 통해 표명된 북측 입장에 대해 유의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통령실은 “지난 몇 년간의 적대·대결 정책으로 인해 남북 간 불신의 벽이 매우 높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인 평화 정착은 이재명 정부의 확고한 철학”이라고도 강조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조·한(남북)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제목의 담화에서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공식 입장을 다시금 명백히 밝힌다”고 밝혔다. 북한이 이재명 정부를 향해 공식 입장을 낸 것은 처음이다.
김 부부장은 또 이재명 정부의 대북 화해 제스처에 대해 “이재명 정부가 우리의 관심을 끌고 국제적 각광을 받아보기 위해 아무리 동족 흉내를 피우며 온갖 정의로운 일을 다하는 것처럼 수선을 떨어도 한국에 대한 우리 국가의 대적 인식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충북 제천종합운동장에서 27일 열린 제58회 대통령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에서 우승한 충남 신평고 선수들과 코치진, 학교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 민법 제781조1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혼인관계에서 태어난 아이에게는 자동으로 아버지의 성이 붙는다. 아이에게 어머니 성을 물려주려면 혼인신고를 할 때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느냐’라는 칸에 ‘예’라고 적고 협의서도 제출해야 한다.
혼인신고를 할 때 이 협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머니 성을 물려주려면 이혼을 하고 다시 혼인신고를 하거나 법원의 허가를 받아 성을 바꾸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2005년 호주제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고 폐지됐지만 아버지 성을 기본으로 물려준다는 민법 조항은 그대로 남았다. 어머니 성을 따를 때만 특정한 절차를 요구하는 것, 그것도 태어났을 때가 아닌 혼인신고 때 사전 협의를 요구한다는 것은 차별이라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이 조항은 바뀌지 않았다. 이설아 세계시민선언 대표(31·사진)는 2021년 3월 이 민법 조항이 ‘혼인·가족생활은 양성평등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 등을 위배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 사건은 그해 4월 전원재판부에 회부됐지만, 4년 넘도록 변론 한 번 열리지 않았다.
지난해 기준 헌법재판소의 평균 심판 처리기간(724.7일)의 2배에 달한다.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한동훈 장관 시절이던 2022년 10월25일 부성우선주의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는 의견서를 냈다. 형제자매 간 서로 다른 성으로 인해 괴리감이 생길 수 있고, 가족관계에서 성이 갖는 전통적 의미 등을 고려하면 위헌성이 없다는 취지다.
이 대표는 지난 16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법무부가 반대를 위한 궤변을 짜냈다고 생각한다”며 “형제자매 간 성이 달라지는 것이 문제라면 부부가 합의해 어머니 성으로 통일할 수도 있는 문제다. 당시 법무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들고 나오면서 수립된 정권 기조에 반대하기 어려워 이런 의견을 냈다고 본다”고 말했다.
24일 김상환 헌재 소장과 오영준 재판관이 취임하며 헌재는 9개월 만에 재판관 9인 ‘완전체’가 됐다. 12·3 불법계엄으로 인한 탄핵 사건들도 대부분 종료되며 국민 기본권을 구제하는 헌재의 본래 역할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이 대표는 정권이 바뀌고 헌재도 재편된 만큼 전향적 결정을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이 문제는 젠더갈등 이슈도 아니고 결코 과격한 주장도 아니다”라며 “‘아이가 꼭 엄마 성을 따라야 한다’는 게 아니라 출생할 때 성을 협의해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이야기”라고 했다. 또 “헌재가 과거 호주제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듯 사회를 리드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했다. 이 대표는 부성우선주의 폐지에 동의하는 시민들의 탄원서를 헌재에 제출할 계획이다.
헌법소원 절차가 지연되는 사이 이 대표는 아이를 낳았다. 100일이 갓 지난 아기는 엄마 성을 물려받았다. 만약 아이가 나중에 커서 자신의 성에 대해 물어본다면 어떻게 답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아이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아빠 성을 물려받은 것처럼, 너도 특별한 이유 없이 엄마 성을 물려받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 성과 아빠 성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중 엄마 성을 선택한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2004년 어느 날 밤 12시 이용관씨(69)는 잠들지 않고 중학생 아들 한빛을 기다렸다. 시험 기간을 맞은 한빛은 밤늦게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다. 용관씨는 귀가한 아들에게 “잠을 좀 자야 말끔한 정신으로 시험을 보지 않겠냐”며 타일렀다. 한빛은 괜찮다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며칠 뒤 아내가 용관씨에게 슬며시 말했다. “학생회에서 들었는데 여보, 그날 한빛이가 독서실 안 가고 여의도 불꽃축제에 갔대.” 고민하던 용관씨는 한빛에게 “문제 있는 애들과 어울리지 마라”며 메일을 보냈다. 한빛이 곧장 반박했다. “아빠,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가 그런 말을 해도 돼요?” 허를 찌르는 아들의 답장에 용관씨는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늘 “한 발 앞서가는 아들”이었다. 전교조 교사인 용관씨는 한빛을 입시 경쟁에서 자유로운 대안 학교로 보냈다. 하지만 한빛은 “진보든 보수든 한국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려면 명문대를 나와야 한다”면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서울대 정치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생이 된 한빛과 불평등한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 토론하곤 했던 용관씨는 언젠가부터 똑똑한 아들의 논리에 졌다. “자기 고집이 있고 바라는 세상이 확고했던” 아들이 용관씨는 못내 자랑스러웠다. 그런 한빛이 2016년 10월26일 “노동자를 쥐어짜는” 현장을 유서로 고발하고 앞서갔을 때, 용관씨는 세상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용관씨는 문학가가 되고 싶었는데 “밥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국어 교사로 진로를 바꿨다. 얼결에 선택한 진로지만 밥 먹듯 청강을 할 정도로 용관씨는 교육학에 깊이 빠졌다. 용관씨는 “한창 사랑받아야 할 시기에 사랑받지 못하는” 소외된 학생들을 사랑했다. 평등한 교실을 꿈꾼 용관씨에게 교육 현장은 “형편없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매 맞고 무시당하는 모습을 참지 못한 용관씨는 1989년 다른 교사들과 전교조를 만들었다. 같은 해 한빛이 태어났다.
똑 닮은 아들이었다. 한빛은 용산참사 희생자, 비정규직·정리해고 노동자 등 소외된 사람들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봤다. 평등한 세상을 꿈꾼 한빛에게 한국 사회는 형편없었다. 한빛은 공책에 썼다. “제 글을 돌아보면 우리 공동체와 세계의 이후를 죄 부정적으로 그려요. 희망은 모두 허상이고 갈등과 모순이 우리를 영원히 괴롭히고 짜증 나게 할 거라고요. 글은 제 인격의 반영이니 제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렇다는 거겠죠. 우리가 삶을 충실히 살아갈 때 축복이 있을 거라 진심으로 믿었다면 나올 수 없는 글들이지 않을까요?”
이상과 현실이 동떨어질수록 한빛은 행동하려 했다. 천주교도였던 한빛은 천주교 재단 병원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자 더는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드라마 조연출로 받은 첫 월급의 절반은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KTX 정리해고 승무원들에게 후원했다. 2016년 대학문학상 수상 후기에서 한빛은 바랐다. “세월호와 정리해고로 아픈 모든 이들, 언제나 나를 이해해주는 부모님까지 덜 추운 겨울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덜 추운 세상’을 바랐던 한빛이 2016년 CJ E&M에 드라마PD로 입사해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미는” 일을 했다. 당시 한빛이 소속된 tvN 드라마 <혼술남녀> 제작팀은 첫 방송 직전 사전 제작에 참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갑자기 해고했다. 한빛은 그들을 ‘정리해고’하고 이미 지급한 계약금을 돌려내라고 독촉하는 역할을 떠맡았다. “경멸했던 삶을 더 이어가긴 어려웠던” 한빛은 “통장 정리하고 남는 돈이 있으면 빈곤사회연대 등 몇 개 단체에 후원금으로 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용관씨였다. 아들은 원하던 드라마PD가 됐고 아끼던 제자도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퇴직을 앞두고 “이제야 편안한 말년을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미래를 함께할 한빛이 사라졌다. 신을 원망하던 용관씨의 ‘애간장’이 녹았다. 한빛을 떠나보내고 간에 농양이 생긴 용관씨는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용관씨는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한빛에게 받은 행복을 돌려줄 수 있을까.’ 용관씨는 한빛이 펼치고 싶었던 뜻과 한빛이 만들고 싶었던 미래를 떠올렸다. 한빛이 사라진 자리에 바꿔야 할 세상이 남아 있었다. 용관씨는 아들을 대신해 그것을 바꿔나가기로 했다.
용관씨와 가족들은 2018년 1월24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만들었다. “방송 업계와 노동 현실을 전혀 몰랐던” 용관씨가 방송노동자들을 만났다. ‘프리랜서’라는 이름 뒤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언어폭력과 임금 체불이 숨겨져 있었다. 용관씨는 방송계 노동 현실을 알리는 캠페인을 기획하고 실태 조사에 나섰다. 변화는 “급진적이지 않고 야금야금” 일어났다. 하루 22시간씩 이어지던 촬영은 최대 16시간으로 줄었고 최저임금에 미치지 않던 임금이 올랐다. 촬영 현장의 노동자들이 용관씨를 알아보고 “고맙다”며 인사했다. 그 사람들이 다 한빛 같았다. 퇴직 후 교실을 떠난 용관씨는 본격적으로 노동 현장을 향하기 시작했다.
이제 용관씨는 노동 문제엔 빠지지 않는 사람이 됐다.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될 때도 용관씨는 단식 투쟁으로 함께했다. 가족들이 말렸지만 용관씨는 “일주일만 하고 쓰러지는 척할 테니 걱정마라”면서 29일을 버텼다.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이 보이는 싸움엔 지치지 않는다”는 용관씨도 가끔은 더는 싸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길을 걸을 땐 어디선가 한빛이 “아빠!”하고 나타날 것만 같아서,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들리면 또 노동자가 다쳤을까 싶어서, 용관씨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용관씨는 딱 두 가지를 후회한다. 한빛이 중학생 때 귀를 뚫지 못하게 혼낸 일, 고등학생 때 드럼을 배우지 못하게 한 일이다. 아들이 원하는 건 다 해주고 싶었던 용관씨는 나중에 한빛을 만나면 물어보려 한다. “네가 펼치고 싶었던 뜻, 너 대신에 내가 열심히 노력하다 왔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고집 세고 똑부러진 한빛이 어떤 대답을 할진 모르겠다며 용관씨는 웃었다. “눈망울이 똘망똘망하고 마음이 예뻤던” 아들을 대신해, 그런 한빛과 똑 닮은 미래를 용관씨는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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